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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일대

반구대 일대 유적 분포도.울산대곡박물관에서 남쪽방향 왼쪽에 위치한 곳 :  울산대곡박물관 >  6.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 > 화장실 > 천전리 암각화 > 소공원, 휴식공간 > 4. 집청정 > 2. 반구서원 > 3. 모은정 > 화장실 > 5. 연로 개수기 > 7.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 대곡리 암각화 > 8. 노바페스 울산엔시스 /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남쪽방향에 위치한 곳: 울산암각화박물관  > 반구대 > 1.반고서원 유허비 > 7. 대곡리공룡발자국화석 > 대곡리 암각화 > 8.논바페이스 울산엔시스 / 울산암각화박물관 서쪽으로 주차장, 휴식공간, 화장실
반고서원 유허비 전경

01. 반고서원 유허비(盤皐書院 遺墟碑)

반고서원 유허비는 고려시대 말 반구대를 찾았던 정몽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정몽주는 한국 성리학의 창시자로 추앙받아온 인물이다. 고려 우왕 때(1376년)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화친하려는 외교정책을 반대하다가 언양으로 유배되었다. 정몽주는 반구대를 찾아 '중양절감회(重陽節感懷)'라는 시를 남겼다. 반고서원 유허비는 지역의 성리학자들이 정몽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포은대 영모비(1885년), 포은대 실록비(1890년), 반고서원 유허비 실기(1901년) 등 3기의 비석이 있다. 비문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비각이 반구대에 있으며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제1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02. 반구서원(盤龜書院)

반구서원은 고려시대 말 포은 정몽주, 조선시대 문신 이언적, 정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1712년(숙종 38년)에 지방의 유생들이 세웠다. 1728년(영조 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다시 세웠고, 1871년(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문을 닫게 되자 유생들이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00년(고종 29년)에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 1967년 반구서원은 사연댐 건설로 건너편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매년 반구서원에서는 음력 3월에 삼현제를 올리고 있다.

반구서원 전경
모은정 전경

03. 모은정(慕隱亭)

반구대 인근에 위치하는 모은정은 청안 이씨 문중의 정자이다. 19세기 말 이용필(1849 ~ 1906)이 정몽주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정각을 지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1920년 그의 아들 정혁과 형제들이 선대의 뜻을 계승해 지은 정자이다.

04. 집청정(集淸亭)

집청정은 1713년(숙종 39년) 병조판서를 지낸 최신기(1673 ~ 1737)가 건립한 정자로 반구정(盤龜亭)이라 불렸다. 『집청전중건기(集淸亭重建記)』에 따르면 최신기는 정몽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구대 지역의 경관이 천고에 깊이 감추어진 것을 애석히 여겨 반구대 북쪽 개울 건너편에 정자를 세웠는데, 이 정자는 자기의 본성을 지키고 수양할 수 있는 별업을 갖춤과 동시에 벗들이 학문이나 기술을 닦는 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이만부(1644 ~ 1732)의 『식산별집(息山別集』3권 『지행록(地行錄)』『반구기(盤龜記)』에 '옥천선동, 완화계라는 글자를 돌에 새기고, 또 학을 그려 넣었는데, 이것은 모두 최군이 한 것이다(上曰玉泉仙洞˚ 曰浣花溪˚ 又畵鶴˚ 俱石刻˚ 皆崔君爲之).'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반구대 절벽에 새겨진 옥천선동, 완화계 등의 각자와 연결된다. '늙은 내가 최군에게 낙서(洛書) 45점을 새기라고 주었다(老人勸崔君˚ 盤石上刻洛書四十五點˚).'는 내용에서 '최군'은 최신기이다. 반구대 절벽에 '운암주인최신기(雲岩主人崔信基)'라는 명문을 볼 수 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19)

집청정 전경
울주 대곡리 연로 개수기 사진

05. 울주 대곡리 연로 개수기(硯路 改修記)

대곡천 가장자리 암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으로, 순치(順治) 12년(1655년) 을미년 2월 18일에 연로(硯路-벼루길) 개수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 공사의 시주(施主), 화주(化主), 석수(石手)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이 명문은 길의 이름이 연로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려주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06.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川前里 恐龍足印 化石)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1997. 10. 9. 지정)
공룡발자국 화석은 공룡의 종류, 이동 경로, 행동 패턴, 생활방식 등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천전리 각석 맞은편 너른 바위에는 약 1억년 전 전기 백악기시대의 초식공룡인 용각류와 조각류의 발자국 화석이 약 130여 개 확인된다. 용각류 발자국의 크기는 60~80㎝ 내외, 조각류 발자국의 크기는 24~40㎝ 내외이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중회색 이암 혼펠스의 비적색층으로 경상누층군 하양층군 대구층에 해당한다.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 전경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전경

07.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大谷里 恐龍足印 化石)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2000. 11. 9. 지정)
반구대 암각화로 접어드는 하천변에는 초식공룡인 용각류와 조각류의 발자국 화석이 약 8개 확인된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입자가 고운 사질 이암층으로, 경상분지 퇴적층 중 하양층군 대구층에 속한다. 공룡발자국과 함께 물결자국, 건열 등의 퇴적구조와 무척추동물의 생흔화석이 관찰되는데, 특히 물결자국이 잘 발달되어 있어 하천 주변의 범람원에서 퇴적된 지층임을 알 수 있다.

08.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

2018년 6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주변 학술발굴조사 중 발견된 신생대(마이오세 전기)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의 발자국 화석이다. 18개의 발자국(앞, 뒷발자국의 평균 길이는 각각 2.94cm, 9.88cm)이 하나의 보행렬로 발견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는 두 번째 보고다. 이 발자국 화석은 발견된 울산의 지역명을 넣어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로 명명되었으며, 그 의미는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를 남긴 코리스토데라는 생존 당시 몸길이 약 90~100cm 정도로 추정되며, 앞‧뒤발가락이 모두 5개이고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뒷발에는 물갈퀴가 있어 물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보행 특성에 있어서도 공룡이나 도마뱀과는 달리 악어처럼 반직립한 걸음걸이로 걸었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확인되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2020)

노바페스 울산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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