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소개 양정욱의 작업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먼저 쓴다.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상의 한 순간, 오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기억의 결,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의 움직임을 조용히 문장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 글은 다시 나무와 돌, 실과 전구를 만나며 또 다른 몸을 얻는다. 손으로 다듬고 묶고 연결한 재료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빛을 머금고, 소리를 내며 하나의 장면이 된다. 그렇게 양정욱의 작품은 읽히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바라보고 듣는 이야기가 된다. 이번 전시에 놓인 여섯 점의 작품 역시 모두 먼저 쓰인 글에서 출발했다. 글은 조각이 되었고, 조각은 다시 우리 앞에서 삶의 한 순간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울산시립미술관 어린이 기획전시 《아이는 아이를 안고》는 이러한 양정욱의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고 기대며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전시의 언어로 풀어낸다. 전시 제목은 짧지만 깊다. 이 제목에는 어른도 결국 조금 더 자란 아이라는 생각, 그리고 삶이란 조금 큰 아이가 조금 더 작은 아이를 안고 함께 건너가는 시간이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여기서 ‘안고, 안기기’는 단지 보호와 돌봄의 몸짓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의 시간을 품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함께 자라나는 관계의 형식이다. 아이를 안는다는 것은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안는 일이기도 하고, 아이에게 안긴다는 것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건네는 일이기도 하다. 전시는 바로 이 상호적인 관계를 감각적인 장면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얼기설기 실로 연결된 수십 개의 나무 조각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따뜻한 오렌지빛 전구는 구조물 위로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은 종소리 같은 울림은 공간에 미세한 떨림을 남긴다. 아이들에게 이 전시는 무엇보다 먼저 감각으로 다가간다. 반짝이는 빛을 따라가고, 느리게 흔들리는 형상을 바라보고, 조용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품 앞에 머무는 경험. 어른들이 작품을 의미로 읽기 전에, 아이들은 그것을 몸으로 먼저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감각의 문턱에서, 전시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건넨다. 우리는 누구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누구에게 안겨 있는가. 양정욱의 작업이 오래 붙들어온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장면들이다. 일하는 몸의 리듬, 대화 사이의 머뭇거림,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화해, 오래 남은 기억의 온기 같은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천천히 형태를 얻는다. 그는 평범한 하루의 풍경 속에서 삶을 지탱하는 감정의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조각의 느린 움직임으로 바꾸어낸다. 이번 전시에 놓인 여섯 점의 작품도 그러하다. 각각은 독립된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함께 놓였을 때 하나의 정서적 풍경을 이루며 관람객을 둘러싼다. 여기에 작가가 직접 쓴 시를 함께 배치한 것은, 작품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조각이 다 말하지 못한 감정의 결을 언어의 층위에서 다시 불러내기 위함이었다. 문장과 조각은 서로를 설명하기보다 서로의 곁에서 울림을 더하며, 관람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천천히 겹쳐보도록 이끈다.
이 전시는 어린이를 위한 전시이지만, 어린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이라는 존재를 통해 어른이 잊고 있던 삶의 감각을 다시 불러오는 전시에 가깝다. 아이들은 작품 앞에서 빛과 움직임, 소리와 그림자를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펼친다. 어른들은 그 곁에서 자신의 오래된 기억과 지나온 시간을 새삼스럽게 마주한다. 아이의 현재와 어른의 과거는 이 공간 안에서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비춘다. 작은 아이를 안고 어떤 순간을 설명하는 어른의 모습을 상상하며 구성된 이 전시는, 결국 아이와 어른이 서로의 삶 속에서 어떻게 다시 만나고 함께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는 어른에게 삶의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게 하고, 어른은 아이와 함께하며 자신의 오래된 시간을 다정하게 마주한다. 그래서 《아이는 아이를 안고》는 돌봄에 대한 전시이면서 동시에 기억에 대한 전시이고, 성장에 대한 전시이면서 동시에 관계에 대한 전시이다. 이 전시 안에서 빛은 단지 공간을 밝히는 요소가 아니라 기억을 비추는 감각이 되고, 움직임은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살아가는 시간의 리듬이 되며, 소리는 설명보다 먼저 마음을 건드리는 정서의 진동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은 결국 하나의 자리로 모인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던 반짝이는 순간들, 서로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소중했던 삶의 장면들, 그리고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통해 다시 배우게 되는 마음의 깊이 말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며 오래 붙들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예술은 때로 아주 큰 질문을 던지지만, 더 자주 아주 작은 순간들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양정욱의 작업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가 특별한 사건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심히 지나쳤던 몸짓과 시선, 빛과 그림자, 누군가를 품고 기대는 순간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음을 일깨운다. 어린이와 어른이 한 공간에 머물며 함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 빛과 소리, 움직임이 어우러진 장면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는 경험은, 어쩌면 이 전시가 건네고 싶었던 가장 다정한 인사일 것이다.
《아이는 아이를 안고》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품 안에서 자라고 있다고. 그리고 삶의 반짝이는 순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안고 안기며 함께 지나가는 이 평범한 시간 속에 있다고. ■ 작가 소개 양정욱은 일상의 이야기를 조형적 언어로 풀어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이다. 자신의 경험과 상상에서 출발한 서사는 작품의 출발점이 되며, 노동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 타인과의 갈등을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작업의 바탕이 된다. 그는 빛과 움직임, 나무의 물성 등을 섬세하게 활용해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양정욱의 작품은 거창한 사건보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 쉽게 말로 꺼내기 어려운 감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거리에 주목한다. 작가는 손의 노동이 느껴지는 나무와 빛, 절제된 움직임을 통해 따뜻하고도 서정적인 장면을 구성하며, 그 안에 위로와 공감의 감정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겹쳐 보게 하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된다.
2013년 첫 개인전 《인사만 하던 가게에서》를 시작으로, 직업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삶의 리듬, 대화의 의미, 사람들의 기억과 관계 등 일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아홉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성곡미술관, 두산아트센터 등 주요 미술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해 왔다. 현재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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