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 울산시 환경정책과 주무관울산에서 천연기념물 ‘호사도요’의 첫 번식 성공은 수확량 감소를 감수하고 기꺼이 모내기를 미뤄 준 한 농민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5월14일, 울주군 남창들녘에서였다. 울산의 새(鳥)통신원 조현표·조우진(월계초5) 부자가 암수 한 쌍을 만나면서부터다. 이는 울산에서 첫 관찰 기록이다. 이후 20일, 시민생물학자 윤기득 사진작가와 짹짹휴게소 홍승민 대표가 암컷이 수컷에게 구애하고 짝짓기하고 수컷이 논 가운데 풀을 모아 만든 둥지로 들어가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었다. 울주군청 천연기념물 호사도요 관리 부서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문제는 5월25일로 예정된 모내기 연기에 따른 농민 피해였다.
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모내기가 늦어지면 벼 품종인 ‘영호진미’ 생육에 지장을 줘 수확량이 줄 수 있다고 했다.
5월23일, 다른 논에서 모내기 중인 농민 엄주덕(온양 동상리 거주)씨를 찾아갔다. 이전에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사업 주민 설명회 때 만난 인연으로 서로 기억하고 있었다. 상황 설명을 했다. 모내기를 미뤄달라고 조심스럽게 요청하자, 엄씨는 “언제까지냐”고 물었다.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떠날 때까지 대략, 6월7일쯤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깨어나도 키워야 하지 않냐”고 새 안위를 걱정했다. 알에서 나온 새끼들이 바로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호사도요는 수컷이 알을 품고 깨어난 새끼들을 돌본다고 설명했다. 엄씨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귀한 손님을 위해 자신의 논을 내주기로 했다.
전국에서 온 사진작가들은 둥지에서 나온 수컷이나 찾아온 암컷을 찍기 위해 한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일부 작가는 ‘둥지 속 알을 찍겠다’ ‘둥지가 잘 안 보이니 둥지만 두고 풀을 베어냈으면 한다’는 무리한 요구도 했다. 하지만 훼손한 이는 없었다. 이들의 관찰 덕분에 5월30일 이른 아침(7시 이전) 4마리가 무사히 깨어나 먹이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부화 소식을 전해 들은 엄주덕씨는 새가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모내기 준비를 했다.
수컷은 새끼들에게 먹이 잡는 법을 가르쳐 주듯 먹이를 잡고 먹이기를 반복했다. 새들의 움직임에 따라 골프장 갤러리를 연상케할 만큼 작가들도 따랐다. 그 과정에서 배수로를 건너던 중 한 마리가 빠지는 사고가 났다. 이를 사진작가가 두 손으로 구조했다. 계속해서 수컷이 새끼들을 데리고 이 논 저 논으로 옮겨 다니는 과정들도 작가들은 기록했다. 지난 6일부터는 새끼 1마리가 안 보인다. 남은 새끼 3마리가 묵은 논으로 들어갔다는 소식도 알려왔다.
“또 왔냐?”고 할 정도로 지난 봄 남창들은 온 새들로 북적였다. 4월27일 제비물떼새를 관찰기록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메추라기도요, 붉은갯도요, 노랑머리할미새와 민댕기물떼새, 진홍가슴, 검은머리촉새 등 연이어 찾아왔다. 이를 두고 조류 전문가들은 남창들녘이 해안가 가까이 있는 먹이터로서 연료 보충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많은 새들이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작년부터 시작된 울산 새(鳥)통신원과 짹짹휴게소 회원을 비롯한 조류 동호인들의 활발한 활동도 이유라 했다. 새를 보는 눈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새들이 오고 간 것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마을 전체가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말처럼 이번 호사도요도의 첫 번식은 농민과 조류동호인과 사진작가, 행정부서가 함께 이뤄낸 소중한 결실이다. 한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모내기를 기꺼이 미뤄 준 농부마음은 그 자체로 아버지 품처럼 넓고 따뜻했다. 어쩌면 호사도요 수컷은 자신들을 지켜줄 농부의 마음을 알고 그 논에 둥지를 튼 것은 아닐까.
윤석 울산시 환경정책과 주무관